교황의 관 앞, 금기를 깬 수녀: 프란치스코와 40년 우정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그의 관이 안치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전 세계에서 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엄숙하고 슬픔이 가득한 그곳에서, 최근 관례를 깨는 이례적인 장면이 포착되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황과 40년 넘는 우정을 나눈 지느비에브 쥬아닝그로스(Geneviève Jeanningros) 수녀(81)가 그 주인공입니다.
관례를 넘어선 순간: 허락된 기도
지난 23일, 교황의 관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된 첫날이었습니다. 파란색 스카프와 남색 수도복 차림의 쥬아닝그로스 수녀는 관을 둘러싼 붉은 띠 바로 옆까지 다가가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전통적으로 선종한 교황의 관 바로 앞은 추기경, 주교, 신부 등 남성 고위 성직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어떤 보안 요원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안내 요원이 그녀가 관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왔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40년의 우정: 교황이 '말썽꾸러기'라 부른 수녀님
이 특별한 배려의 배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쥬아닝그로스 수녀의 40년이 넘는 깊고 특별한 우정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두 사람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하며,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 시절의 아픔을 공유하며 깊은 유대감을 쌓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황은 생전에 쥬아닝그로스 수녀를 프랑스어로 '르 앙팡 테리블(L'enfant terrible)', 즉 '말썽꾸러기 아이'라는 애정 어린 별명으로 부르며 각별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용감하게 목소리를 냈던 그녀의 성품에 대한 교황의 애정 섞인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작은 자매':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벗
프랑스계 아르헨티나인인 쥬아닝그로스 수녀는 국제수도회 **'예수의 작은 자매회'(the Little Sisters of Jesus)** 소속입니다. 이 수도회는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영성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처럼 살아가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쥬아닝그로스 수녀는 무려 **56년 이상** 이탈리아 로마의 오스티아 지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받기 쉬운 **트랜스젠더 여성, 노숙인, 이주 노동자** 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왔습니다.
그녀는 현재도 다른 수녀와 함께 카라반(캠핑카)에서 거주하며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녀의 이러한 헌신적인 삶과 인도주의적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지난해 7월에는 직접 오스티아의 수녀 공동체를 방문하여 그녀를 격려하고 치하하기도 했습니다.
우정으로 남긴 마지막 메시지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드는 엄숙한 장소에서, 관례를 깨고 교황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릴 수 있었던 쥬아닝그로스 수녀의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생 강조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형식보다는 마음의 진정성'**이라는 메시지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위나 성별, 관습을 넘어선 40년의 깊은 우정. 프란치스코 교황과 지느비에브 수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연대와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